<아파트 문화와 사랑방의 소실>
월간 SPACE(공간) 1983년 8월호
저자: 최정호
저자는 한강맨션아파트를 최초의 중앙집중난방 설비와 '리빙 룸' 중심 설계를 채택하여 그로써 이후에 지어진 수많은 아파트들에 "일체 궤도 일탈이 용납되지 않는 듯한 어떤 엄격한 모형을 각인해 놓았다"는 점에서 "하나의 신기원을 이룩했다고 할만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리빙 룸' 문화의 임팩트가 "벌거벗은 벽면을 멋이 되었건 가져다 메워보려는 연쇄반응"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가옥에 있어서의 안-사랑의 구별을 결정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철폐"시켰다고 말한다.
특히 '리빙 룸'을 사랑방에서 착상된 듯 싶지만 현실적으론 안방의 연장, 치장한 안방이었다고 진단한 점이 흥미롭다. 안주인(주부)이 '홈드레스'(실내복)를 입고 대부분 안손님을 받아들이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란다. 안방(사)에서 사랑방(공)이라는 질서와 의식이 없어진 상황을 학생들의 무분별한 작문 태도, 나아가 당대 산업 및 예술품의 하락한 질에 비유하며 거듭 독자에게 반문하고 있다. 끝으로 수동적, 소비지향적, 사치촉진적 '리빙 룸' 위주가 아니라 다른 내면적인 질서를 주는 새로운 아파트 설계 필요성을 언급하며 글을 맺는다.
오늘날엔 안방이 아니라 마당이나 마루가 오늘날의 거실로 변형되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왜 당시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추측컨대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높지 않던 시절이라 주부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고, 자연스레 주거 공간의 중심인 '리빙 룸'을 장악(?)하게된 모습을 저자는 곱게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엄연히 부부의 사적 공간인 침실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안과 밖, 공과 사의 위계를 남과 여의 역할 고정과 구분하지 않은 시대적 한계에 머물러 있던 것일 테다.
근대 이전의 한국성이라는 것이 어쩌면 근대 이전의 전통적 공간 위계와 구축 형식 및 재료가 만들어낸 특정 미학, 스타일에 불과한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보기엔 근사하지만 뚜렷한 물리적 경계와 공간의 구분은 사는 사람의 위계와 역할을 구분짓고 특정 구성원은 억압하거나 속박했을 것 같다. 그런 한편, 오늘날 유효한 도시 유형을 남겼는가? 오늘날 알려진 도시 한옥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시도된 근대의 산물이다. 전통가옥이 의의가 있다면, 전통(조선시대로 한정된)의 이미지를 손쉽게 연상케 한다는 점과 비교적 지역의 재료와 구축 방식을 통해 지속가능한 건설 및 건축환경을 취했다는 점 정도이지 않을까? (시대의 한계로 나무를 재료 및 연료로 무분별하게 취해 17세기 이후 민둥산이 흔했다는 점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시도된 바 있는 조선시대에 한정된 미학화는 다른 나라의 미니멀리즘 건축과 차별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굳이 한국성을 찾아야 한다면 조선시대를 벗어나 근대화시기~동시대를 잘 관찰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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