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특강 2023: 현대 건축사 강의 5회차
LDK 딜레마: 한국 현대 주거공간의 성립과 모순
강연자: 도연정 교수
시간: 2023년 8월 16일 17-19시 30분
장소: 정림건축문화재단 1층
주최: 정림건축문화재단
강의개요:
한국 아파트는 한국 주거 근대화의 과정이자 결과로 중요한 자리를 점하지만, 그에 대한 고찰은 주로 도시적 맥락과 물량적 성과에 편향되어왔다. 본 강의는 한국 아파트의 성립 과정을 조명하는 새로운 관점으로, 아파트에 내재하는 한국 주거문화의 전통과 근대성, 여성과 가족의 관계를 다룬다, LDK로 대표되는 한국 아파트의 보편적 평면에 담긴 건축적·문화사적 의미를 탐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출처: 정림건축문화재단 http://forumnforum.com/archives/4542
도연정 교수는 한국의 주거공간이 근대화를 거치며 LDK라는 독특한 한국성을 낳게 된 과정을 추적한다. 한국인의 생활양식과 공간형태가 합리성에 기반한 기술 발전과 시대상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변형되었는지 근대 주택들의 평면을 분석하고, 이를 주도한 기술 및 이념의 계보를 좇는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LDK가 한정된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는 장점과 공동체 중심의 주거공간이란 기치를 앞세워 정착되었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엌의 장식성이 강화되어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가사노동의 수행 주체를 한 명으로 한정하며 나아가 그 부담을 가중하고 있었다. 이에 저자는 부엌을 다시 분리하며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최근의 현상에 주목한다. 억압과 불합리를 은폐하는 LDK를 고집하거나 부엌을 고립된 요소로 한정하고 개선하려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한국성 - 우리의 일상적인 공간과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 - 에 기반한 대안적 주거공간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호소로 끝을 맺는다.
강의를 듣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렸다.
1. 여러 구성원이 평등하게 가사를 부담할 수 있는 부엌의 형태 나아가 다이닝과 거실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2. 근대화를 겪으며 남아있거나 새로이 형성된 한국성은 무엇인가?
3.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는가?
4. 동아시아 각 국가들의 지배적인 또는 최근 등장하는 집합주택 평면에서는 L/D/K 관계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5. 만약 L/D/K 대안을 만들어낸다면, 기존의 아파트 단지 형태 및 공급 방식에 편입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나?
6. 더 나은 L/D/K 대안은 고층 타워형 주동의 주택 형태 안에서 시도 가능한가? 또는 여기서 벗어나야 가능한가?
7. 주거유닛의 다양화라는 전제 아래 하나의 유닛으로 편입되어야 하는가? 또는 유닛 전반의 전면적인 재고가 필요한가?
8. 건축가들이 단독 주택에서 실현한 L/D/K 공간과 배치에서 그 대안을 발견할 수 있는가?
9. 기업의 마케팅과 대중 매체(드라마, 유튜브 방송, 인스타그램)를 통한 이상적인 L/D/K 이미지가 유포되고 소비된 점에서 본다면, 카메라와 가상의 시청자가 L/D/K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을까? 새로운 대안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아래는 강의 녹음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강의 전문이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한 생략, 요약, 왜곡을 거쳤기에 강연자의 의도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오해의 여지가 있다면 작성자의 책임이다. 현장 분위기도 나름 중요하다 생각해서 다소 방만한 요약이 된 점 이해 바란다. 또한 이 게시물은 거듭 수정될 수 있음을 밝힌다.
0. 들어가며: LDK에 주목하는 이유
나는 한국성이란, 형태 뿐 아니라 한국인이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한국 현대 주거공간의 대표로서 아파트(2021년 기준 전국 주택의 68%, 서울의 88.7%가 공동주택 유형이며 그 가운데 다세대, 다가구 주택[소위 집장사집]의 경우 아파트 평면이 참조 모델이 되었다는 점에서)의 가장 특징적인 LDK 공간에 주목했다.
그 특징이란 첫 번째, 거실을 중심으로 방이 둘러싸여 있고, 두 번째, 거실과 부엌형 식당이 물리적 경계 없이 통합되어있으며, 세 번째, 현관에서 거실이 넓게 펼쳐진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타워형 아파트가 등장하며 통합도가 증가, LDK가 하나의 유닛을 이루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 같은 거실중심형 평면은 70년대 말에 형성되기 시작해 80년대부터 보편화, 90년대 고착화되었으며 90년대 초부터 한국에서 보편화된 이유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선행연구자로서 최재필, 박준수, 박영환, 정광희 교수, 김소원 박사 등이 있었다.
이들 연구는 공통적으로 거실중심형 평면 혹은 거실의 개방성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주로 거실에 초점을 맞춰 한국의 전통과의 유사점을 평가하는 방법이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거실의 개방성을 인정했지만 거실의 유래 - 한옥의 마당이냐(개방성), 대청마루냐(신성공간) - 로 입장이 갈렸다. 한편으로 도시 한옥의 평면과 아파트 평면이 똑같다는 이야기가 유튜브로 유포되고 있는데, 형식 상 비슷해 보일지언정, 바닥 높이의 고저차, 즉 물리적 경계의 유무를 무시한 것이므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
이처럼 우리는 익숙하다는 이유로 LDK를 거실의 관점에서만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주거형태는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나 혹은 어느 하나의 우연한 요소의 결과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본 포괄적인 범위의 사회문화 요소의 산물" (아모스 라포포트Amos Rapoport의 <주거형태와 문화House Form and Culture>(1969)) 이므로, 다른 요소가 있는지 여부를 비판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1. 주택의 양적 보급과 질적 향상
전쟁 이후 원조 및 국민주택을 개발할 때 주택의 양적 보급과 질적 향상에 초점을 두면서 전통식 좌식 생활에서 서구식 입식 생활로 전환, 온돌의 개량 또는 폐기, 식침(식사와 취침)의 분리 등의 개념이 반복 등장하게 된다. 이는 전통주거문화가 미개하다는 콤플렉스와 근대화를 통한 국력 증강의 열망이 혼재된 상황에서, 앞서 1920-30년대에 주창된 주택개량론이 그대로 영향을 미친 결과였다.
1950년대 공영주택(ICA주택 9평형) 및 1950-60년대 해마다 발표한 표준주택 도면(국민주택 단위평면설계도 1959-13, 15, 18평형)에서 볼 수 있듯, 다양했던 실험에 비해 정착하지 못했던 단독 주택 형식이 보여준 혼란한 상황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 지지부진했던 상황에서 아파트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아파트에선 한정된 현관 위치와 외부공간의 부재 및 평면의 수직 적층이라는 차이로부터 새로운 실험이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종암아파트(1958)와 마포아파트(1962). 일부 거실 중심 평면처럼 보이긴 하지만 대체로 전통적인 개념의 부엌이 남아있다. 외부공간에 가깝게 배치를 하거나, 연탄 아궁이로 인한 고저차, 또는 연탄 온돌 보일러 도입으로 바닥 높이가 같아졌지만 여전히 거실과의 단절된 모습, 바닥 마감재의 구분 등이 그렇다.
본격적인 아파트 영향은 강남 개발에서 발생한다. 국가 안보 및 인구 분산의 이유로 강남에 주요 기관 및 아파트가 건설되었으나 당시엔 인프라가 강북에 집중되어 인구유입이 어려웠다. 문제 해결을 위해 아파트 주거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그들이 요구했던 단지화된 아파트를 강남에 추진하게 된다. 또한 단지 선정을 위한 연구에서 출퇴근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 중산층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문구가 언급된다. 이는 평면의 차별화, 노선 상가의 도입, 견본 주택 및 선분양 시스템의 전신을 사용한 분양 방식을 야기한다.
또한 서민을 대상으로 한 시민아파트(금호, 와우 시민아파트)의 실패 사례 역시 큰 계기가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한정된 면적에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도입된 아파트가 정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분양금을 부담할 수 있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삼으면서 공간적인 발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신축과 재개발의 두 양상으로 나뉜다. 재건축 움직임을 보면 당시 지어진 아파트가 얼마나 순진한 생각으로 지어졌는지 알 수 있다. 단지화, 주상복합 개발로 인한 주체간 이권다툼,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초래된 문제가 그것이다. (아파트 역사로부터 무력감을 느끼곤 하는데, 김현섭 교수의 지난 강의를 듣고 역사학자의 사명으로서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2. 거실중심형 평면에서 LDK로
한강맨션아파트(1970)는 마포아파트(1962-64)와 다음에서 차별점을 갖는다. 부엌과 식당을 함께 쓰는, 다이닝 키친을 도입하면서 부엌이 거실과 가까워지고 면적이 커지게 된다. (나는 일본에서 이 개념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물리적 경계는 남아있었고 평수가 큰 경우엔 쾌적성을 위해 식당을 부엌 밖으로 분리시켰다. 오늘날의 LDK는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닌, 점진적으로 형성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반포아파트(1단지: 1972-74; 2, 3단지: 1975-76)는 모두 남향 배치를 보이면서 부엌이 북측에 위치했으며, 일부 근린생활시설을 민간을 통해 개발(한신상가아파트)했다. 이때부터 부엌과 거실은 같은 축선 상에 위치하고 그 사이 경계의 변화(유리 미닫이문을 통한 시선의 통과)가 일어나게 된다.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잠실5단지아파트(1977)에선 층수 제한이 없어져 15층으로 건설되었으며 경계를 다룬 실험이 훨씬 다양하게 나타난다. (문을 없애는 대신 부엌과 거실이 서로 보이지 않게 하거나 식사공간을 그 가운데에 두는 등) 소형 평수에선 완전한 LDK(거실과 부엌의 축일치, 물리적 경계의 부재)가 등장한다. 이는 단순히 좁은 면적에 기인했을 뿐 아니라 부엌 설비의 차이의 영향이 크다. 79년 이후엔 LDK가 모든 아파트에 완전히 정착된다. 요컨대, 마포아파트는 L+K, 한강맨션아파트는 L+DK 또는 LD+K, 잠실5단지에서 LDK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은 일본과 비교했을때 DK를 받아들이는 기간이 훨씬 길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니시야마 우조는 1940년대 초반 간사이 지역 나가야에서 식당을 개별 실로부터 분리하고 부엌에 가깝게 두는 데서 착안, 식실분리론을 주창한다. 이 개념은 패전 이후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동경대학교엣서 공용주택 표준형을 만들어 건설되는 2DK로 본격적으로 실현된다. 상류 주택이 아닌 서민 주택을 새로운 도시주택의 모델로 삼았다는 데서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한국의 경우 식사 전용으로 발달한 공간이 없었고 식실분리 개념이 아파트 평면에 등장했음에도 실제 생활 양식으로 수용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단독주택의 경우 더 오래 걸림) 많은 선행연구에 따르면, 변화의 계기는 난방 기술의 발달, 공간적 개방감을 중시하는 한국 주거 문화로 인해 거실 중심의 평면에서 물리적 경계의 제거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 식모층이 소멸되어 '가족만의 부엌'을 추구한 시기와도 일치한다.
사실 L과 DK의 경계 실험은 앞서 63년도의 국민 표준주택 연구의 일환으로서 '리빙 키친' 개념으로 등장하고 많이 지어진 바 있다. 그러나 기존의 식생활 양식과 비기계화된 부엌 설비를 이유로 사람들이 싫어해 64년도부터 짓지 않았다. 이는 LDK의 성립에 있어 부엌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실제 부엌의 입식화가 급증한 시기는 서울 내 아파트가 많이 지어진 시기와 일치한다.
3. 한샘과 시스템 키친: 프랑크푸르트 키친의 신화와 작업삼각형
4. 과학적 생활, 국민 근대화, 新현모양처 그리고 부엌
70년대 많은 업체가 일본으로부터 스테인리스로 만든 싱크대 생산 기술을 배워와 부엌에 들이기 시작한다. 한샘은 후발주자였는데, 건축가 출신이었던 조창걸 사장이 재료의 고급화, 토탈 인테리어(시스템키친)로서의 접근, 부엌에 관한 산학협력 연구를 통해 차별화를 추구, 업계내 우위를 점하게 된다. 연구의 경우, 가사노동의 합리화라는 미국 가정학의 방법론에 근거한 것이다. 흔히 한국 시스템키친의 원조로 알려진, 마가라테 슈테 리호츠키의 <프랑크푸르트 키친>(1926-1927)과 동선 다이어그램은 크리스틴 프레데릭의 <뉴하우스 키핑>(1912)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는 다시, 프레데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에 관한 법칙>(1911)과 프랭크&릴리안 길브레스의 동작연구(1914)와 피로연구(1919)의 영향을 받았다. 더 올라가면 19세기의 캐서린 비처의 <아메리칸 우먼스홈>(1869)이 있다.
릴리안 길브레스는 남편의 사망 이후 산업공학에서의 동작연구를 가사노동의 효율성 연구로 선회한다. 연구 초점이 복잡한 동선의 단축에서 순환 작업 공간의 확보로 옮겨간 것.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작업삼각형의 토대가 된다. 이 개념은 1949년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발표되는데, 개념에 기반한 점수표나 기준이 상당히 자의적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부엌에선 작업삼각형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말 효율적인지에 대한 설명이 전무했기에, 이것이 허상임을 밝히는 논문을 전에 작성한 바 있다.
그렇다면 왜 효율성이 강조되었는가? 캐서린 비처의 <아메리칸 우먼스홈>은 가사노동의 전문화를 통한 가정생활의 안정화를 목표로 했다. 가사노동의 합리화, 전문화를 통해 주부가 중심을 잡아 가정을 안정시키고 그로써 국가가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이 효율이란 개념은 동아시아로 넘어오며 능률이란 단어로 번역되는데, 여기엔 근면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박길룡 건축가, 김종양 건축가의 부인 조기은 씨가 이 개념에 동의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 정부는 도시와 농촌의 부엌 개량을 위한 선전에 힘쓴다. 주부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주거환경을 근대화시키려는 의도가 강했다. 당시 부엌과 주택에 대한 정보는 여성지를 통해 접할 수 있었는데, 서구권 주부의 생활을 우리와 비교해 우열을 논하며 현대 여성상을 적극적으로 전파했다. 당시 주부에게 방대한 지식 습득과 책무를 부과했는데, 김중업 건축가를 포함한 화려한 집필진이 펴낸 <현대여성생활전서>가 대표적이다.
5. LDK 딜레마: 아파트 부엌과 우리 생활
LDK를 사용하는 주부 입장에서 불편하다는 인식이 80년대 중반에 실시된 조사에서 확인된다. 냄새와 소음이 확산되기 쉽고, 주방이 깨끗이 유지되어야 하는 등의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LD+K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LDK가 오늘날 하나의 유닛처럼 존재하는 이유는 타워형 주동 아파트 등장에 의한 평면 변화라 할 수 있지만, 가족 중심의 주거 공간이 선전 도구로 이용된 영향도 없지 않다. LDK가 정착한 이후엔 실질적인 효율보다 장식성이 강화되는 경향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등장한 것이 대면형 부엌인데, 94년도 윤국철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대면형보다 벽면부착형 부엌에 선호도가 컸다.
또 다른 연구에선 자녀의 연령이 낮을수록 대면형 부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윤복자 교수의 경우 이 같은 현상을 주부의 연령대에 따른 익숙한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라고 보았지만, 나는 어린 자녀가 있는 주부는 부엌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면형에 대한 선호도는, 쉽게 생각하는 가족과의 소통 또는 부엌일의 협력 때문이 아닌, 부엌일을 포함한 가사노동의 확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87년도 대한주택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부엌일을 하면서 동시에 수행하는 일의 종류가 자녀 육아 및 학습 위주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넓은 평수의 경우, 부엌의 일부를 가리는 슬라이딩 도어가 등장하거나 실질적인 기능을 하는 부분을 간이 부엌 뒤로 숨기는 현상이 나타난다. 즉, LDK에서 부엌이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움에 따라 '히든 키친'의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어쩌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샘의 경우 여전히 대면형 부엌과 한국형 공간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드러내는 것은 한샘의 하이엔드 모델(6천만원 상당의)인데, 부엌 만을 두고 연구하면 이렇게 된다는 문제점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LDK 전체로 접근했다면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었을 것.
6. 나오며
건축이 해야 할 일은, 전통 주거 공간에서 있었던 부엌과 방과 마루가 오늘날 기능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LDK 공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정착된 가장 한국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지만, 부엌의 경우 작업삼각형이란 개념에 붙잡혀 대면형과 같은 다른 형식이 등장해도 여전히 한 명만의 노동에만 적실한 상황이다. 나는 이러한 관점에서 익숙한 LDK 공간이 완벽한 해법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선행연구자들은 부엌에 관한 연구가 더 이상 할 게 없다고 했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LDK가 완벽해 보임에도 여전히 부엌이 (더)불편한 이유였다. 왜 생선을 집에서 굽지 못하는가? 또한 거슬러 연구하다 보니 우리나라 시스템 키친이 유럽의 <프랑크푸르트 키친>보다는, 미국의 가정학과 일본의 싱크대 기술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7. 부언
역사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역사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 훨씬 많고 집에 대한 관심은 더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집에 살고 있기에 자신의 경험에 의거한 의견을 낼 수는 있습니다. 그에 따라 제가 한 이야기를 예외로 치부한다(부엌에서 취사를 하지 않는다던가, 여성이 아닌 다른 구성원이 가사노동을 한다던가)면 더이상 논의를 이어갈 수 없겠지요.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집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기념비적인 건물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공간을 통해서도 (한국적인) 탁월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또한 막연하게 여성의 지위 향상을 쉽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실질적으로 공간을 사용하는 입장에선 개선이 되지 않았거든요. 불편해도 직시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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