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릉(英陵)
여주, 대한민국, 1469.
건축: 조선왕조
영릉은 조선의 4대 임금 세종(재위 1418~1450)과 부인 소헌왕후 심씨(1395~1446)의 무덤이다. 최초 태종(세종의 아버지)의 헌릉에 조성되었다가 1469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조선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관리되었고 일제강점기 동안 방치되었다고 한다. 이후 1970년대 발전국가 시기에 영릉 정화공사와 능역 관리시설 건축을 통해 변형되어, 다른 조선왕릉들의 형식과 경관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2007년과 2011년의 발굴조사를 거쳐 과거의 참도(왕의 참배길)의 경로와 유구를 확인하고 복원 과정을 거쳐 2020년에 개방, 지금에 이르게 된다.
주차장에서 꽤 걸어서 홍살문에 다다르자, 문의 프레임 안으로 참도와 정자각, 그 너머의 능침이 보였다. 홍살문과 참도가 이루는 축선과, 정자각에서 능침에 이르는 축선이 어긋나 있는 데서 묘한 기시감과 분위기를 느꼈다. 영주의 부석사가 대표적일 텐데, 내가 여태 경험한 전통건축들의 축선이 이렇게 대놓고 어긋난 경우는 거의 없었기도 했고. 축선 주변이 비워져 방해물이 없는 데다 두 축선이 어느 한 쪽에 종속되지 않아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바로 보이는 건물은 왕릉의 제향을 위한 시설인데, 시선과 나란한 방향의 정전과 수직 방향의 배위청이 丁자 형태로 결합되어 정(丁)자각이라고 한다. 배위청은 제사를 지낼 때 움직임을 편하기 위해 덧붙여진 애드-혹(add-hoc) 같은 건물이고. 이 또한 사후적인 감상이긴 하지만, 독립적인 기능과 조형을 갖는 두 건물이 접합되어 만드는 밀도 높고 육중한 조형과 이를 부각하는 틀어진 배치가 홍실문의 소실점 효과를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평일 늦은 오후에 가서 그런지 한산했다. 도심과 멀찍이 떨어진 데다 그늘도 거의 없는 왕릉을 누가 찾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외국인 커플 한 쌍과 어린 남매가 있는 가족을 마주쳤다. 아마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관광 정보를 보고 찾아왔겠지. 전형적인 여행자 차림의 백인 커플을 보고 생각했다. 한편 초등학생 저학년으로 보이는 어린 남매와 어머니, 이모로 구성된 가족은 자신들이 시애틀에서 왔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영어를 쓰고 어른들은 한국말을 썼다. 이민 2세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을까?
못된 생각이지만 미디어에 나오는 스테레오 타입을 그들에게 대입했다. 여자아이는 좀 더 어렸긴 하지만 영화 <애프터 썬>에 나오는 소피를 빼 닮았다고 생각했다. 무더위에 붉게 상기된 뺨과 귀찮게 구는 모기에 한껏 찌뿌린 미간. 짜증을 부리다가도 어머니가 사진을 찍으려고 소리내는 원, 투, 쓰리에 그 애는 활짝 웃었다. 그 아이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이 곳을 어떻게 기억할까? 기억할 만큼의 인상을 받았을까? 조선시대 동안 군림했던 영릉이 발전국가에게 수난을 겪었다가 현대에 이르러 복구된 역사를 알게 될까? 이전에도 그랬듯, 이 어린 아이들도 저만의 개인적인 역사를 써내려 가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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